뇌를 속이는 ‘VR’, 괜찮을까?

기술 발달할수록 부작용 연구 필요

가상현실(VR, Virtual Reality)은 인간의 감각을 실제 현실처럼 인식시키는 기술이다. 가상의 환경 속을 현실과 가장 유사하게 느끼도록 만들어야 한다. 허상을 실제 현실로 믿게 만들기 위해서 VR은 청각, 시각, 촉각, 후각 등 인간의 오감을 자극한다.

오감은 뇌에서 내린 명령을 수행하는 기관이다. 결국 VR 콘텐츠를 현실과 가장 가깝게 느끼기 위해서는 ‘얼마나 인간의 뇌를 속일 수 있는가’에 달린 셈이다. 이처럼 기술로 우리의 ‘뇌’를 지속적으로 속일 때 과연 정신 상태에는 아무 문제가 없을까.

‘눈’을 속이면 사람들은 마치 존재하지도 않는 공간과 사물이 자신의 앞에 있다고 믿게 된다. 가상현실기술은 오감을 통해 뇌를 속인다. ⓒ ScienceTimes

‘눈’을 속이면 사람들은 마치 존재하지도 않는 공간과 사물이 자신의 앞에 있다고 믿게 된다. 가상현실기술은 오감을 통해 뇌를 속인다. ⓒ ScienceTimes

뇌가 판단하는 거짓과 진실의 사이, VR이 존재

가상현실은 평소의 인지데이터를 기준으로 인간의 뇌를 교란시키는 기술이다. 인간의 눈은 매우 복잡하면서도 단순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흔히 우리는 ‘보는 것’을 믿는다. 내가 ‘본 것’만 믿기도 한다. 그만큼 사람들은 시각 정보를 맹신하는 편이다. 때문에 ‘눈’을 속이면 사람들은 마치 존재하지도 않는 공간과 사물이 자신의 앞에 있다고 믿게 된다.

하지만 기술이 개발되고도 오랜 시간 가상현실 기술은 인간의 눈을 잘 속이지 못했다. 눈을 속이기 위해서는 가상공간에서도 현재 자신의 시각 정보에서 제공하는 넓은 범위를 한 번에 볼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실제 시각 정보에서 느끼는 공간 정보는 해상도가 높아야 한다.

고개를 움직일 때 마다 사물의 변화도 함께 빠르게 변화해야 한다. 정보가 늦어지면 뇌는 ‘가짜’라고 판단한다. ‘거짓’이라는 정보는 인체 안에서 거부 반응을 보이게 된다. 그동안 가상현실 기기를 사용하면 금세 어지럽고 구역질이 났던 이유였다.

360도 VR로 보는 사무실의 풍경. 현실에서의 공간과 VR에서의 공간은 다르게 보인다. ⓒ ScienceTimes

VR 기기로 보는 사무실의 풍경. ⓒ ScienceTimes

하지만 점점 가상 및 증강현실(VR·AR) 기술은 고도로 발전, 확대되고 있다. 과거 컴퓨터 화면이나 특정한 화면으로만 접해야 했던 VR 콘텐츠는 발전된 고해상도의 디스플레이와 3D 동영상 기법, 음향장치, 촉각과 후각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장치까지 달고 나와 뇌를 현혹시키고 있다. 시각에 의해 발전된 3D 실감음향 기술은 청각을 사로잡아 현실감과 몰입감을 극대화 시킨다.

하지만 이처럼 빠르게 실생활에 유입되는 속도에 비해 VR 콘텐츠로 인해 인간의 정신이 어떤 영향을 받는지, 어느 정도 제한이 필요한지의 검증은 미흡한 상황이다.

우리는 흔히 ‘악몽’을 꾸고 난 후에 정신적인 손상을 입기도 한다. 오랜 시간 악몽이 뇌에 각인되어 괴로워하기도 한다. 충격적인 게임이나 영화, 드라마 등 미디어를 통해 스트레스나 트라우마가 생길 수도 있다. 하룻밤 사이의 꿈보다, 기존 미디어 보다 더욱 현실감 있는 VR 콘텐츠를 반복해서 접하게 되면 어떨까.

가상현실 기술이 뇌에게 ‘거짓’을 ‘진실’처럼 받아드리라는 신호를 보내는 만큼 자극적인 VR 콘텐츠는 정신세계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도 있다.

VR콘텐츠는 뇌와 직결, 다양한 임상사례 검증 필요

김동철 심리케어센터 김동철 원장은 “최근 VR 기술이 발달하면서 기술 개발에만 몰입하는 현상이 야기되고 있다”고 지적한 후 “기술 개발 지침뿐만 아니라 다양한 임상 연구와 함께 VR이 정신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결과를 개발지침에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만 13세 미만의 어린이에게는 심한 경우 망상장애 등의 심각한 VR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다. ⓒ ScienceTimes

만 13세 미만의 어린이에게는 심한 경우 망상장애 등의 심각한 VR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다. ⓒ ScienceTimes

김동철 원장은 지난 4월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18 VR 엑스포’에서 “VR이 뇌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개인마다 생체학적인 반응, 심리적·정신적 환경이 상이하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뇌에 왜곡된 기억을 심거나 집단적인 혼란을 야기할 수도 있다”며 현재 VR 개발 시스템의 허점을 경계했다.

VR은 시각을 통해 쉽게 뇌를 자극하고 각종 이미지를 에너지로 전파하기 때문에 다른 영상물에 비해 더욱 주의를 요한다. 반복적인 VR 체험이 지속되면 빛의 깜박임으로 인한 습관성 시신경 경련이나 현기증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시적인 공황상태가 되거나 간질 등의 발작 가능성도 있다.

특히 어린이 등 청소년 시기에는 더욱 쉽게 뇌의 자극을 받기 때문에 선별적인 VR 콘텐츠 제작 및 보급, 유통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김동철 원장은 “특히 만 13세 미만의 어린이 등 청소년 시기에는 VR 콘텐츠 부작용으로 불안감, 불쾌감, 매스꺼움 등의 증세가 쉽게 나타날 수 있다. 심할 경우 방향감각 상실, 머리의 통증은 물론 망상장애, 강박증 등의 신경학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2016년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이 내놓은 ‘가상·증강현실 기술에 관한 기술영향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VR 교육의 부작용으로 ‘피로감과 현실 부적응 등 교육 효과 저하’ 및 ‘VR 교육과정 구성이 미흡할 경우 책의 효용성 및 가치 외면, 사고력 및 상상력 감퇴 가능성’이 제기됐다.

재해 상황에서의 VR 시뮬레이션 또한 ‘위험상황에서 피해를 증폭시킬 우려, 정보의 오류 및 시스템의 오작동으로 혼란 및 피해를 초래할 수 있으며, AR 정보로 인한 시야 방해로 안전사고 발생 가능성 존재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또한 의학 분야 치료 콘텐츠로써의 부작용도 제기됐다. 시력 저하, 어지러움, 사용 불편감은 점차 해소될 수 있는 문제이지만 ‘환자의 건강상태, 연령, 균형감각, 뇌인지 문제 등 개인별로 다를 수 있는 반응이나 가상과 현실을 구분하기 어려워 중독에 취약할 수 있다’는 점이 부작용으로 꼽혔다.

김동철 원장은 “VR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서 큐브처럼 구조화된 공간에서의 VR 체험 위주에서 벗어나 좀 더 오픈된 공간에서 실행하게 만드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하고 “미리 개발자들이 부작용에 대해 인지하고 이를 미연에 방지하도록 하는 프로그램이 중요하다. 맞춤형 VR 콘텐츠 지침이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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